텅 빈 집에 미도스지가 신발 벗는 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울렸다.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을 「텅 비었다」 라고 표현하게 된 것은 분명히 이시가키 때문이다. 미도스지는 묵직한 보스턴백을 발치에 내려놓고 장시간의 비행으로 녹초가 되어버린 몸을 푹신한 소파에 묻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빈 집이라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다. 원정을 떠나기 전에 각을 잡아 정리해놓은 소파...
11. 우리는 일 년 중 석달 열흘을 같은 나이로 산다. 네 생일이 지난 5월 29일부터 내 생일이 다가오는 9월 11일까지. 그 기간이 되면 너는 늘 묘하게 들떠 있었다. 테시마 선배랑 동갑이라고, 금방 어른이 된 것 같다면서 해맑게 웃었다. 나이를 먹는 것을 좋아하는 건 아이의 특권이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내 생일이야 어찌됐든 너의 생일을 성대하게...
안녕하세요, 지구인 여러분. 이 행성은 일주일 뒤 멸망합니다. 텔레비전에 얼굴을 들이밀고 자칭 외계인이라는 존재들이 그렇게 말했다. 지구 멸망에 대처하는 테시마 준타의 자세 真手 "너는 그 말을 믿어?" 퍽 소리가 나면서 그가 던진 공이 미트에 꽂힌다. 오른손으로 공을 쥐고 방금 날아온 방향을 향해 공을 다시 던진다. 미트에 꽂히는 소리, 다시 퍽. "안 ...
첫 자취집은 걸을때마다 나무마루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나고, 얇은 벽에서는 방음이 조금도 되지 않아 윗집 사람의 히스테릭한 짜증에 이어서 옆집 남자의 거의 매일 밤 사람을 바꿔가며 나누는 사랑의 소리와 교성이 그대로 들리고, 하루 걸러 한 번 씩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나오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대학 사람이었기에 지난 밤 벽 너머에서 격렬한...
지기 전 가장 높이 피어오르는 불꽃처럼 우리는 사랑을 했다. 너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네게 사랑한다는 말을 되돌려준 건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명확한 수치로 들었을 때의 일이다. 얼마 남지 않은 생 동안 나는 온전히 내 생명을 태워서 너를 밝혔다. 쏘아올린 불꽃 真手 시한부 인생이라는 단어는 너무 진부하다. 어쨌든 모든 인간들은 언젠가 반드시 죽게 ...
선배, 저는 3년 뒤 첫눈 오는 날 죽을거예요. 처음 몸을 섞은 날, 관계를 마치고 마나미는 테시마에게 말했다. 침대에 걸터앉아서 담배를 피다 말고 테시마는 엎드려 있는 마나미를 돌아보았다. 한참을 눈을 마주치면서도 별다른 대꾸가 없자 마나미는 그저 눈을 곱게 접으며 헤헤 웃을 뿐이었다. 3년 뒤 첫눈이 내린 날, 마나미는 욕조에 물을 받아두고 손목을 그은...
울고 있는 내가 나에게 되묻는다. 너는 어디서 울고 있어? 테시마 준타라는 사람 真手 흘러넘치기 시작한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테시마는 스스로가 왜 우는지 알 수 없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 그대로 누워있었다. 기억을 되돌이켜 꿈의 끝을 더듬어보았다. 자는 동안 꿈에 누군가가 나왔다. 가만히 서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감춰지지 않은채 새어...
휴대폰이 울렸다. 올해의 공식적으로는 아홉번째 의뢰, 비공식까지 포함하면 열번째 의뢰다. 키타구 요난잇초메 13-4번지 306호/테시마준타/흔적 남기지 않고 처리 짤막하게 이어진 메일을 보고 마나미는 인상을 찌푸린 채 통화를 눌렀다. 신호음이 뚜르르 제대로 가기도 전에 상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뭐야?" "나야말로 뭐야, 네요. 이런 귀찮은...
"장미의 꽃말이 뭔 줄 알아?" 테시마의 말에 마나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가시가 있다?" "바보야, 그건 꽃말이 아니잖아." 테시마가 가볍게 면박을 주며 어깨를 으쓱했다. "너 그럼 오늘이 무슨 날인줄은 알아?" 양치를 하다 말고 마나미가 두번째로 고개를 갸웃갸웃거린다. 도무지 모르겠다는 투다. 그리고는 입에 거품을 잔뜩 물고 하는 말이라곤, 월요...
노래 불러줘요. 뜬금 없는 마나미의 말에 그의 손을 잡고 걷고 있던 테시마가 옆을 돌아봤다. 뭐라고? 파란 간판의 카라칸 앞에서 마나미의 발이 멎고는 손가락으로 간판을 쿡쿡 찌르면서 또박또박 말한다. 테시마 선배, 노래요. 테시마가 당황해서 다시 물었다. 우리 지금 밥 먹으러 가는 길 아니었어? 마나미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고는 테시마에게 매달렸다. 딱 한...
"키스는 이렇게 하는거야." 농밀하게 웃으면서 팔을 들어 준타의 목에 감고, 테시마는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이마가 닿고, 코끝이 스치고, 파르르 떨리는 가느다란 숨이 서로에게 느껴질 만큼의 짧은 거리까지 다가간 후 멈춘다.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긴장하고 잇는 준타의 입술을 살짝 물었다. 방금 물을 마셔서 서늘하고 촉촉한 입술이 먼저 닿고, 차례로...
스물네시간의 유예 真手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없이 산다. 그러니 갑자기 닥쳐온 죽음 앞에 너나할 것 없이 무력할 수 밖에 없다. 죽은 뒤에 전하지 못한 말을 후회해봐야 소용없다는 것 정도는 아버지가 죽었을 때 마나미는 이미 몸소 겪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는 동안 떠오른 모든 말을 떠올린 사람에게 숨김 없이 다 전하고자 했다. 좋아한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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